Panama City

나는 2008년에도 남미를 41일간 다녀왔었다. 그때의 남미에 대한 기억이 비행기에서 통로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목구멍으로 밀려 들어와 목에 걸렸다. 

“켁. 켁~~~” 

이번에는 틀림없이 Panama에 왔구나. 남미와 같은 이 공기. 전기가 꺼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싸우나에 들어갔을 때 그 꾀재 제하고 덩어리가 무거워서 목구멍에 걸리는 그 공기.  

Backpacker hostel에 들어가 방을 알아보니 벌써 꽉 차 들어갈 곳이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10이나 더 비싼 hostel에 들어가 그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곳 주인이 내가 잃어버린 론니플레닛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중고 값을 치르고 다시 중남미 론니플레닛을 여행 첫날에 구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명료한 목적이 있었다.  

‘ 더욱더 현실 속으로’ 

나는 내가 믿는 신에게 기도했다. 

‘ 하나님 이제 제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긴 여정의 출발점인 Panama city에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 보여주시길 원하시는것을 제가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분명히 이 여행에도 당신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만들어 놓으셨을 거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지켜보세요. 다 이겨나갈 테니까요. 아멘’ 

창문이 없는 방은 불을 끄니 어슴푸레한 실루엣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이 되었다. 먹물에 얼굴을 처박은 나는 미라처럼 침대로 가다가 침대 모서리에 종아리를 찍혔다.  

“으~~~악~~~” 

침대는 나의 발이 발목 삐져나올 정도로 작았다.  피곤했던지 나는 힘차게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 놓여 있는 강에서 노를 저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름끼치는 소리에 나는 노를 놓치고 말았다. 

“에~~~엥~~~~~ 에~~엥~~” 

모기다!!!!!  

더욱 무서운 것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Slum.

아침부터 파나마 시내는 북적북적 난리도 아니었다. 지프를 버스로 고친 성능이 썩 좋지 않아 보이는 차들은 아침부터 온 시내를 메탄 천지로 만들었다. 검은 피부에 반지르르하게 기름때가 낀 사람들은 어디를 그렇게 가는지 동분서주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활력이 넘치는, 생명력이 넘치는, 역동적인.

하지만 나에게 그들은 할 일 없어 돌아다는 것 같았다.  봤던 사람을 몇 번씩 길에서 만나다 보면....

남미와 마찬가지로 중남미에도 정말 좋은 것은 과일이 정말 싸다는 것이다.  땀이 24시간 흐르는 더위와 매연으로 목도 아픈데 시원한 얼음에 멜론을 썰어 넣고 우유와 설탕 그리고 알 수 없는 현지 조미료를 넣어 간 후 1.5리터 만 한 큰 컵에 주는 것이 1달러조차 하지 않으니, 그 맛과 시원함은  찌는듯한 한여름밤 반지하 단칸방 안에서 망가진 선풍기를 마주 보고 표면에 살얼음이 살짝 덮인 식혜를 벌컥벌컥 마시는 기분이었다. 

“끼시에라 우노 멜론콘레체 뽀르빠뽀르” 

영어를 하는 것 보다 더 혀가 꼬여야 한다.  나의 스페인어 노트에는 필수적인 스페니쉬 문장이 한글로 쓰여있다. 

1- 끼시에라 _________ -> Can I get ________

2- 꼬모에스타 ? -> How are you?

3- 우노마스 -> one more

4- 돈데에스타_____? -> Where is ________?

5- 올라 구아빠~ -> 하하하 작업용???? 

6- 우노 도스 뜨레스 꽈뜨로 싱코~~~~~ ->  one , two , three , four , five ~~~~~ 

멜론 아이스밀크 하나를 주문했다. 

많이 마시면 설사를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자꾸 마시게 된다. 한번에 많이 마시면 금도끼 은도끼 장수가 내 머리가 나무인 줄 알고 찍지만, 이것 또한 알면서도 자꾸 한 번에 벌컥벌컥 마시게 된다.

남미나 중남미를 가면 꼭 주문해보시기 바란다. 이렇게 

우노마스!!! 

머리가 한쪽으로 눌리고 멜론 콘레체를 빨대로 빨면서 값비싼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나는 한눈에 이곳에서 구별되었다.  

어! 저 동양인 성룡 영화에서 봤는데! 어! 젝키찬아닌가? 쿵후 영화에서 봤던 동양인이 이곳에도 있네?  발가락은 왜 만지는 거지? 장풍이라도 쏘려나? 

이곳 사람들은 나를 ‘치노’라 고 불렸다. 

치노는 중국인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미국인을 양키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작년에 남미를 처음 갔을 때는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검은 머리에 찢어진 눈은 이 사람들에게는 다 중국인이 된다. 

처음에는 수십 번씩  

“노! 치노, 코레아노” 

라고도 하고 화가 나서 정말 장풍을 쏴 버릴까도 수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져다주었다.

영화 ‘월컴투 동막골’에 나오는 곳과 같이 진짜 오지에서 어린 시절을 콧물 먹으면서 보낸 나는 마을 부잣집 아이의 집 마당 밖에서 텔레비전을 훔쳐 보며 난생처음 미국인을 보았고 기억하는 단어는 고작 you와 양키이다. 그래서 나는 훈련 가는 미국인을 우연히 보면 항상  

“유, 유, 양키, 양키, 초코렛, 초코렛,” 그랬었다. 

그 시절 내가 미국인을 보며 유! 양키! 라고 했듯이 지금 이곳 사람들도 나를 치노라고 부르나 보다 생각하고 장풍을 준비하던 손을 거두어 들였다.

Panama가 어떤 나라인지 어떤 관광지가 있는지는 인터넷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반나절을 어슬렁거리면서 파나마 수도에서 느낀 것이라고는 이 나라가 중남미에 파나마라는 느낌보다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 같은 느낌이었다. 화려한 건물들은 모두 외국계 기업의 건물들과 간판들이었고 부서질 듯이 초라하게 남은 건물들은 정체성 없이 무안하게 거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대단한 대한민국의 성이 세 개랑 알 쥐와 한대는 식민지 쟁탈전에 최전방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모습이였다. 참호를 파고, 포를 쏘고, 진지를 구축하면서 어느나라보다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어 보였다.

잠시 걸음을 쉬고 있는대 매인 시내를 중심에 두고  외각으로 빠지는 골목마다 이상하게 무장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기에 저 군인들이 지키고 있을까 호기심에 난 그 골목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입구에서 군인들이 나를 가로막고 섰다. 

“여기 들어가면 안 됩니다.” 

“왜 안 돼죠?” 

“위험하니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뭐가 그렇게 위험하기에 막아서는 것일까 궁금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들어갈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다른 골목을 돌아다녀 봐도 그곳을 가는 골목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한 골목에서 군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는 그곳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쓰레기가 널려 있고 시커멓게 타버린 듯한 아파트에는 주렁주렁 빨래가 널려 있었다. 별거 없는 시내 외각이었다. 힘없이 나를 지나치는 아주머니를 지나쳐 저 멀리서 한 밴치에 앉아있는 6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를 향해 인사하며 환영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점점 그곳으로 가까워지자 그 손짓은 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손짓이 아닌 이곳에서 나가라는 손짓이었다. 

“여기는 너가 오면 안돼” 

“왜 안 되죠?”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이유를 알수 없는 노인의 행동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 노인을 지나 조금 더 들어서자 곧 무너질듯하게 모여 있는 아파트들을 둘레로 공터가 나왔다. 그곳에는 줄을 이용하여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를 이어 빨래를 걸고 있는 아낙네들이 있었고 한쪽에서는 워키토키로 음악을 듣고 있던 한 젊은 청년이 나를 보고 이어폰을 귀에서 뺏다. 

나는 공터의 입구 앞에서 멈추어 섰다.

예상치 못한 나의 출현에 다들 의아해 했는지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스페인어 수첩을 꺼냈다.

“ 꼬모 에 스타?” 

다들 어이가 없이 쳐다보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던 청년이 나를 보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석탄처럼 시커먼 얼굴에 반이 허연 이빨로 뒤덮였다.

나를 향하여 손짓을 하며

“이리로 와 나랑 사진 찍자”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그가 신기해서 가만히 서서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같이 사진찍자. 이리와 같이 사진찍자” 

나는 카메라를 들어 그를 찍는 포즈를 했다. 

“나 혼자 말고 같이 사진 찍자고 이리로 와서 같이 사진 찍자” 

그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면 다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 같았다.  

저 녀석도 참 웃는 게 해맑구나. 같이 사진 찍고 싸이월드에다 올려야겠다 생각하고 한발 두발 그 친구에게로 다가가는대 순간적으로 나의 좁혀졌던 시 아가 넓혀졌다. 

여자들이 없어졌다!

‘ 빨래를 널고 있던 여자들이 없어지고 빨래들 담아놓은 바구니만 덩그러니 있다. ’

고개도 돌리지 않고 순식간에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사라졌고 2층에 닫혀 있던 아파트의 문이 3군대나 열려 있다.  아파트 벽  뒤쪽으로 흙먼지가 조금 보인다. 그 아파트는 내가 걸어왔던 길 즉 내 등 뒤로 연결이 된다. 녀석의 오른쪽 주머니도 이상하게 부풀어져 있다. 공터를 중심으로 길은 2군대. 공터쪽을 가로 지르는 길과 내가 걸어왔던 길. 뒤가 막히면 갈 곳이 없다.’

특전사 5년은 괜한 시간이 아니었다.  

튀자! 

어머니가 문만 열어놓으면 집을 나가 돌아다녀 2번이나 미아가 될뻔했어 문을 잠가놓고 커온 갓난아이, 시골에 산이란 산을 오르며 더덕을 캐던 초등학생, 공을 앞으로 뻥 차고 달리는 고급축구를 구하던 중학생, 수능준비로 부족한 체력에도 체육대회 1.5킬로에서 1등을 차지한 고등학생, 새벽 가락시장에서 마늘 배달을 하던 대학생, 5년간 10킬로의 산을 40kg 군장을 매고 뛰었던 특전사 게릴라.

하나님은 나에게 튼튼한 다리를 선물하셨다.   

뒤에서 웅성거리는 그 친구들의 외침은 순식간에 귀에서 멀어졌다. 

남미나 중남미에서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을 파벨라라고 불른다. 영화 ' City of God의 배경인 브라질의 Rio de Janeiro에 유명한 파벨라처럼 이런 Slum은 도시에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삶의 지탱을 범죄로부터 해결하는 사람들... 남미와 중남미 여행에서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파벨라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Backpacker hostel   

Backpacker hostel과 같은 공동숙박형 도미토리와의 처음 인연은 2008년 남미여행에서부터 였다. 

잠시 그때 이야기를 해보겠다.

페루에 처음 도착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잠자리를 찾아 들어간 곳이 Backpacker였다. 이유는 단 하나 싸다는 것뿐.

방에는 2층 침대가 4개가 있었다. 총 8명의 사람이 잘 수 있는 공간이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7명의 세계 곳곳에서 모인 배낭여행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아이는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남자아이는 잠을 자고 있고 뭐 이렇게 자유롭게 자신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첫 충격은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찾아왔었다.

책을 읽고 있던 여자아이가 침대에서 내려와 가방에 물건을 꺼내러 가는 대 티셔츠에 팬티만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완전 인형처럼 예쁜 아이가 노랑나비가 그려진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눈은 자꾸 그 여자아이의 팬티 위에 노랑나비에로만 갔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들고 화장실로 도망갔었다.  

화장실과 샤워기 2개가 있는 조금 한 공간이었다.   샤워기는 2개가 마주 보게 설치되어 있고 안이 비치는 투명한 비닐로 나누어져 있었다. 나는 옷을 벗고 비어 있는 샤워기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런데 한 유럽여자아이가 들어오더니 옷을 벗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내 맞은편 샤워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실루엣이 보이는 이 상황......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1절 2절....음란한 생각을 머릿속에 지우는 주문을 외웠다. 

허겁지겁 샤워를 끝내고 다시 숙소로 들어왔는데 몇 분 후 그 내 맞은 편에서 샤워하던 유럽여자아이가 큰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한 채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속옷과 겉옷을 입는 곡예를  선보였다. 

오 마 갓?  오 땡큐 갓! 

다시 panama로 돌아가자.

이렇듯 배낭여행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도미토리형식의 Backpacker hostel의 장점은 

1: 숙박비가 싸다

2: 많은 배낭족을 만나서 서로 여행 정보를 교환한다.

3: 수많은 젊은이가 모이는 곳이라서 매일 밤 파티가 있다.

4: 같은 루트로 가는 배낭족들과 같이 여행을 다닐 수 있다. (서로 루트가달라 헤어지는 순간까지) 

주의사항

영어를 꼭 할 줄 알아야지 혼합될 수 있다.

샤워, 화장실을 같이 쓸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귀중품은 도난당할 수도 있으니깐 스스로 잘 지켜야 한다. 

나는 샤워를 했다. 이제는 나도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아랫부분만 가리고 숙소를 돌아다닌다.  

숙소에서 한 유럽여자아이를 만났다. 이 유럽여자아이는 멕시코에 있는 대학에서  멕시코문화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스와인 플루 때문에 여기 파나마에서 피해있는데 다시 들어가려고 해도 못 들어가게 해서 큰일이야. 내 물건들과 짐들이 다 멕시코에 있고 이제 쓸 돈도 다 떨어져 가고 있는대..” 

이렇듯 이곳에는 많은 관광객만큼이나 멕시코에서 발생한 스와인 플루를 피해 도피해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최종적으로 도착해야 할 멕시코로부터 많은 불안한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 넌 여기에 오래있을꺼야?”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내일 떠나려고.” 

“얼마나 됬는데?” 

“하루.” 

“아니 그런데 벌써 떠나?” 

“응 도시는 별로 볼게 없네.” 

“그럼 어디로 갈 거야?” 

“음... 어디로 가지...음..” 

그때 마침 TV에서는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3가 방영되고 있었다. 

“아!~~ 저기 저기 가야겠다.” 

“저기가 어딘데?” 

“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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