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에 ‘김선주 스클’ 분교가 들어서는 날


나이 들어간다는 것, 백번 양보해도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어떤 개똥철학을 갖다 붙이고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늙는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아줌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끔찍함과 생경함이란.


근데, 언젠가부터, 내겐 ‘나이듦’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얼마나 더 멋있어지고 성숙해질까, 은근한 기대감마저 품게 되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교장샘, 김선주 선배 덕분이다.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생각이 젊을 수 있고, 멋있어 보일 수 있고, 심지어 섹쉬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김선배가 입증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욕심내지 않는 그녀의 유일한 욕심#


명색이 동업종 종사자(언론계)인지라 우선 직업 사회에서 김선배의 처신의 아름다움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신문>의 대표적인 컬럼니스트로서의 그녀의 명성을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 평이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우면서도 한없이 따뜻한 그녀의 글을 탐독하는 열성팬 중 하나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음은 언론계에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였을까. 노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이후 여러 차례 김선배를 ‘거시기한 자리’에 모시려고 공을 들였다. 김선배가 사는 아파트까지 찾아간 ‘높으신 분’들도 여럿 있었다. 김선배는 그때마다 완곡하게 고사했고, 그런 제의를 받은 사실조차 벙끗 하지 않았다. 그중 한두 번은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모두 정부측 인사들이 발설한 것이었다.



나 역시 지난해말인가 어떤 술자리에서 유인태 당시 정무수석으로부터 ‘김선주 모시기’ 실패담을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며칠 뒤 김선배에게 집요한 제의를 끝끝내 물리친 이유와 비결을 물었더니, 김선배의 답변은 지극히 명료하고 간단했다. “언론인으로 끝나는 선배도 한둘쯤은 있어야지.”


청와대에서 전화 오기만 바라고, 안 온 전화도 왔다면서 ‘몸값’을 은근히 올리는 속물 언론인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선거철만 다가오면 대선 캠프로 줄줄이 몰려가 어제의 취재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세태다.


그런 세상에서, 언론인에서 시작해서 언론인으로 마감하는, 그런 선배 하나쯤 갖게 해준 교장샘이 난 너무도 고맙고 자랑스럽다.


교장샘은 물욕도, 명예욕도, 자리 욕심도 내지 않는다. 그런 교장샘이 유일하게 욕심내는 것, 포기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멋이다.


언론인으로서의 처신에서부터 옷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교장샘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건 ‘멋’이다. 천만금이 생긴다고 해도 ‘쪽 팔리는’ 일은 절대로 못하는 사람이 바로 교장샘이다.


#다짜고짜 끌고 가서 귀를 뚫어준 그녀#


어느 날 마포 오피스텔에 셋이 모였다. 교장샘, ‘선주스쿨’의 영원한 교감 유시춘, 그리고 불량학생 나. 시국방담에서부터 속썩이는 자식 이야기까지 현란한 수다를 떨던 끝에 교장샘이 우리 둘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게 아닌가! “둘다 참 대단하다. 아직 귀도 안 뚫었네. 귀걸이를 선물하고 싶어도 못하잖아.”


당장 같이 가서 귀를 뚫자고 성화였다. 언젠가 뚫어봐야지 생각하던 ‘불량학생’은 교장샘이 귀도 뚫어주고 귀걸이도 하나씩 하사하신다니, 불감청고소원이어서 후후 웃었다. 교감은 “나는 죽어도 귀는 못 뚫는다” 포악을 떨면서 거부했고.


결과는? 교장샘의 판정승. 우리 둘을 인솔하고 휑하니 택시를 타고 자신이 뚫었다는 숙대 앞 금은방집에 데리고 가서 1,2초만에 전광석화처럼 두 사람의 귀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그리곤 쌀톨만한 귀걸이를 하나씩 귓밥에 붙이도록 조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은? 6월항쟁의 주역답게 교장샘에게 극렬히 저항했던 유시춘은 귀걸이 없이는 외출도 안할 정도로 열렬한 ‘귀걸이족’으로 변절했다. 나 역시 1-3천원짜리 귀걸이를 옷 색깔에 맞추어 골라 끼는 걸 ‘생활의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이렇듯 작은 일로도 주위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이가 바로 교장샘이다.


#교장샘이 가장 말을 적게 하는 ‘김선주스쿨’#



우리가 모인 자리에서 교장샘은 주로 듣는 편이다. 언제나 ‘하모 하모~’ 연신 추임새를 넣어가면서 온몸으로 진지하게 우리의 쌩구라를 즐겁게, 진지하게 들어준다.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고무하고 지지하고 찬양하고 격려하는 게 교장샘의 일이라나.


출석률은 나빠도 충성심은 강한 학생 정혜신은 말했다. 잘 듣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 상투적이 되지 않는다고. 우리 교장샘이 그 산 모델이다. 나는 교장샘이 세상이나 사람에 대해 상투적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민, 세상살이의 이면과 속살을 들여다볼 줄 알기 때문이다.



교장이 말을 가장 적게 하는 학교. 이래서 선주학교요, 선주학교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이제껏 보아온 교장샘들은 자고로 늘 혼자 떠들었다. 왜 그리도 가르치고, 꾸짖고, 훈계하고, 지시할 일이 많은 건지. 오죽 하면 중학교 때 일년 내내 비슷한 훈화를 장시간 늘어놓는 교장샘이 조회대에 오르자 내가 가짜로 기절하는 시늉을 다 했겠는가 말이다.


말단 학생, 심지어 편입생, 보충생이라도 할 말을 다할 수 있는 학교라서 나는 좋다. 말 많은 내가 꼬래비라도 얼마든지 견제받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불성실, 불량학생인 나도 학교 행사에 웬만해선 빠지지 않는 이유다.



#“우리 모두 100킬로미터씩 남하해서 살자꾸나”#


그러나 과묵한 교장샘이지만 한번 입을 뗐다 하면 ‘촌철살인’이다. 타석에 자주 들어서진 않지만, 안타나 홈런만 골라치는 슬러거답다. 슬러거들이 쉽게 치는 것 같지만 오랜 연습을 거쳐 타격의 달인이 됐듯이, 교장샘의 촌철살인도 인생의 내공이 쌓인 결과라 하겠다.


그중 가장 내 마음에 쏙 들어온 이야기가 “노후 걱정 할 거 없다. 말년엔 다들 일년에 100킬로씩만 후진하면서 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신문지상에 노후를 보내려면 최소한 몇 억은 있어야 한다, 부동산과 동산 비율을 몇 대 몇으로 해야 한다, 라는 기사가 도배를 할 무렵이었다. 텔레비전만 틀면 신동엽이 얄밉게 생글거리면서 ‘보장자산이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대서 심사를 흔들어대던.


교장샘 말인즉, 늘그막에 직장도 그만둔 처지에 주거비가 비싼 서울에 있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 따라서 서울 집이든 전세든 처분해서 100킬로미터씩만 후진하면 ‘길’이 열린다는 것, 일이년에 한번씩 새로운 지방도시로 옮겨가서 살면 지루하지도 않고 인구도 적도 공기도 서울보다 좋으니 일석삼조라는 것이었다.


나는 교장샘의 ‘100킬로미터 남하론’이 결코 웃자고 하는 이야기거나 공허한 뜬구름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그리고 확고한 철학을 담보로 한 ‘미래 구상’이라고 믿는다. 이명박의 ‘대운하 프로젝트’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소망스러운.


나는 그려본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전국 각지의 소도시와 소읍에 흩어져서 이리저리 초대하고 방문하고 살 날을. ‘김선주 학교’ 분교가 전국 곳곳에 생기고, 그 분교들을 교장샘이 귀걸이 휘날리면서 방문하게 될 날을. 물론 내가 개설할 분교는 제주도 서귀포 부근에 위치할 것이기에 가장 경쟁력이 높겠지만 말이다.  



서명숙(선주스쿨 닷컴 오픈을 기념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