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가 당연히 인터넷 인기검색어 1위일텐데...네이버에는 주간 인기검색어 순위 1위로 나오는데 다음에는 일간, 주간 인기검색어 순위 어디에도 안 나오네요. 다음에서 아예 인기검색어 순위에 못나오게 조치를 했나 봅니다.
밤늦게 장자연리스트를 검색하다 이래저래 맘이 착잡해진 미갱이
P.S 빠리걸님이 물으신 거에 대한 미갱이 생각...나쁜 사람을 욕할 때도 연령차별은 안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생각임니다.
2009.03.24 13:22:50 (*.61.196.149)
빠리 걸
엇. 윗 글로 미갱님이 불쾌하셨다면 죄송.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연령차별'을 정확히 어찌 정의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당.
혹시 저 리스트에 10세 소년이 들어가 있어서 " @#$%^& ....." 이렇게 말하믄 연령차별이 되는 건지요?
2009.03.25 07:09:17 (*.249.240.253)
미갱이
빠리걸님. 제가 그런 댓글을 달아서 맘 상하셨다면 저도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요. 빠리걸님의 그 글을 읽는 순간 장자연님 사건의
논지와는 상관없이 '87세 넘은 넘도 껄떡대고' 에서의 도가 목에 탁 걸리면서 너무 맘이 편치 않아져셔 였습니다. 저는 성차별, 인종차별,
학력차별, 경제차별, 외모차별 등 여러 종류의 차별 만큼 연령차별도 심각한 차별이고 극복되어야 할 중요한 차별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범죄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런 차별적인 언어는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는 게 제 생각이었구요.
'87세 넘은 넘도 껄떡대고'라는 말은 저에게는 '여자가 왜 그렇게
껄떡댔다냐??!' '흑인 주제에 감히 저런 짓을!!!' '병신이 지랄한다더니 병신 주제에 강간을?' 머 이런 식의 성차별적이거나, 인종차별적,
장애인차별적인 발언과 같은 선상의 차별적인 언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행위가 좋든 나쁘든 그 행위를 한 사람은 인종과 장애여부나 연령에
상관없이 평가되어야지, 여자가 해서, 할아버지가 해서, 신체장애자가 해서 더 나쁘다고 이야기하려면 그래서 더 나쁘다는 사실을 입증할만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한 차별적이고 공격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저는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 말을 '연령차별적'이라고 받아들인 근원에는 성욕에 대한 제 기본적인
생각이 전제되어 있었겠지요. 저는 성욕은 성, 신체장애여부, 인종 뿐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이 인정받고 추구해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주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빠리걸님과 했던 '노인의 성'에 대한 오랜 논쟁때도 제 의견을 분명히 밝혔었는데요. 저는 성욕을 갖고, 추구하고,
즐기고, 표현할 권리는 연령으로 제한받아서는 안되는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종의 재생산 기능을 다 한 후의 인간의 섹스는
자연스럽지 않다는 빠리걸님의 의견에 제가 동의하지 않았던 거구요.
말하자면 인간이 옷을 입기 시작한 것도 애초에는 벌레나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패션의 기능이 훨씬 강화되어 있고,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먹기 시작했지만 온갖 다른 종류의 먹는 즐거움들이 더
중요해졌듯이, 재생산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성욕도 이젠 섹스 그 자체의 즐거움이 더 강화되고 중요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욕구가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부분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근본적으로 인종, 성, 연령을 이유로 제한적으로 허용되거나 억제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거지요. (물론 어린이/청소년의 성에 대한 제한적인 허용은 또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이것은 따로 또 이야기하구요. 여기서는 성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성인의 경우에 한정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너무 정색을 하고 써서 죄송스럽습니다만. 빠리걸님에게 화난 거는 아니고요. 어쨌든 이 문제를 연령차별이라는 차원에서 들여다 본 제 생각입니다.
2009.03.25 09:29:35 (*.61.196.149)
빠리 걸
제 질문은 '연령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머 배우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라 보시믄 됨다. 그러니 '죄송'......이런 말을 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그런데 다른 질문.... 저 리스트에 10세 소년이 있었다면 어땠겠는가, 그래도 연령차별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되는 건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가 들을 수 있다믄... 다음에 확실한 이해와 더불어 '소통'에 진전이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9.03.25 12:07:49 (*.224.28.208)
미갱이
그렇네요. 빠리걸님.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근데 저 리스트에 올라 있던 남자들의 공통점은 어떤 형태로든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가진 한국 남자들로 대충 정의될 수 있는데요. 한국에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가진 10세 소년을 찾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아닐까요? 제가 이야기한 것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른, 비슷한 집단의 사람들을 욕하면서 유독 나이를 이유로 더 공격을 가하는 것은 연령차별이라는 것이었는데요. 10세 소년이 들어 있었다면 리스트의 다른 사람들과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분석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쨌든 제 개인적으로는 10세 소년도 성욕이 있고 그걸 충족시킬 권리가 있다는 것은 당연히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욕의 자유스러운 충족을 위해서는 현대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자율 통제능력, 경제적인 독립능력이 수반되지 않고는 힘든 측면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기간 어린이/청소년에게 유보하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에 저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어느 연령까지 어린이/청소년의 돈 벌 권리, 경제활동할 권리를 제한하는 사회적 합의에 동의하듯이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연령차별이란 성적, 경제적 자기통제권을 갖는 18세 정도 이상의 연령층에 한정된 것 같네요. 혼자 걸을 수도 없는 0살에서, 혼자 돈 벌어 살 수 없는 10세까지 다 포함하는 원칙론적인 연령평등의 개념은 아닙니다.
휴~어렵네요.
2009.03.26 12:18:58 (*.61.196.149)
빠리 걸
'연령'만 가지고 봅시다. (경제적 능력, 권력... 이런 거 다 빼고요. 글고 여성, 장애인, 인종... 이런 문제의 차별에 대해서는 선주수굴에서라면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거고요.)
흔히 인간의 삶은 1) 유년기, 청소년기/ 2) 장년기/ 3) 노년기로 3등분 해볼 수 있겠습니다.
1)유 청소년기에 해야할 일, 기대되는 일- 성장. 배움 2) 장년기에 해야할 일, 기대되는 일- 종의 재생산, 생산적 경제활동 3) 노년기에 해야할 일, 기대되는 일- 삶의 정리. 휴식 (경계선의 나이야 융통성있게 생각하시고...)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0세 소년이 위의 리스트에 끼어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듯이, 87세 노인이 위의 리스트에 끼어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폐경(완경)이 가까워 온 40대 후반 여성이 < 아들 > 낳겠다고 의료기관 문턱을 넘나든다면........ 그거 예쁘게 보이지 않을 것 같거든요. 87세 노인이 저런 리스트에 끼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미갱님 논리대로라면 40대 후반의 저 여성을 예쁘게 보지 않는 것도 연령차별일까요?
또 다른 논점으로 옮기자면,
말하자면 인간이 옷을 입기 시작한 것도 애초에는 벌레나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패션의 기능이 훨씬 강화되어 있고,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먹기 시작했지만 온갖 다른 종류의 먹는 즐거움들이 더 중요해졌듯이, 재생산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성욕도 이젠 섹스 그 자체의 즐거움이 더 강화되고 중요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갱이님)
옷에 패션의 기능이 강화되고, 음식에 먹는 즐거움이 더 중요해지고 성욕도 그 자체의 즐거움이 더 중요해져있다......... 그래서 그것은 더 많이 용납되고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갱님 생각이라면... 저는 좀 다른 생각을 합니다. (사실 미갱님이 '깔치뜯어보자'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 경우 나이 들면서 생각이 점차 정리되는 것은 <의 식 주 섹 >은 소박할 수록 좋겠다는 겁니다. 그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알고보면 자본주의사회의 성장동력이었고 그러한 욕구를 부추기는 것이 자본의 전략이었지요.
그리고 자본의 무한 성장욕구는 탐욕이라는 것이 세계적 금융위기에서 @#$%&*(...............
의대를 나온 사람들은 성형외과를 택해서 돈을 벌고 싶어하고, 여자들은 예뻐지고 싶어하고, (연예인들은 거의 대부분 이마에 지방을 넣어 동그랗고 팽팽한 이마를 만들고, 쌍커풀은 물론이고 눈을 양쪽으로 찢어 크게 보이게 하고, 코를 세우고, 턱을 깎고, 입술을 도통하게, 가슴을 부풀리고...)
그래서 의대를 가기 위해 유치원부터 사교육을 하고, 일제고사를 통해 경쟁을 부추기고.... 악순환이 계속되지요.
리영희 쌤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이런 자본주의는 절대로 오래갈 수가 없다. 현명한 대중은 멀리 보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갈 것이다."
2009.03.26 20:51:57 (*.224.28.130)
미갱이
엉...자고 일났더니...제가 출근준비 시간이라서 바로 진집한 답을 올리지는 못하겠고요. 짬날때 다시 생각해서 올릴께요. 특히 섹스와 관련한 문제에 가면 빠리걸님과 제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거는 예전부터 여러번 논쟁하면서 서로 알고 있었던 일이라서. 어쨌든 서로 다른 생각들을 진지하게 또 함 들따 봅시다.
2009.03.27 08:19:42 (*.249.240.253)
미갱이
장자연님 사건과 상관이 없는 연령차별 논쟁이 계속되어서 장자연님께 미안한 맘이 드네요. 빠리걸님의 첫
질문에 제 의견을 밝히다 이렇게 논의가 계속되었는데요. 장자연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에서 장자연님 사건은 또 진집하게 따로 들따
보겠습니다. 어쨌든 연령차별과 관련한 제 의견은 계속 함 말해 볼랍니다.
먼저 제 의견을 빠리걸님이 말씀하신 '부자연스러움'에서 풀어볼랍니다. 빠리걸님이
"10세 소년이 위의 리스트에 끼어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듯이, 87세
노인이 위의 리스트에 끼어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하신 말씀이요. 네. 저도 동의합니다. 87세 노인이 위의 리스트에 끼어 있는 거 제 눈에 절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습니다. 저한테도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제뜻은 부자연스럽지만, 부자연스럽게 보는 것이 연령차별적인 인식에 근거한
것이니까 리스트에 있는 다른 연령의 남자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보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빠리걸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동시대, 대부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어떤 현상을 공통적으로 자연스럽게
보는' 인식이 있고, 그 인식이 변화되어야 할 사회적, 경제적 요인들이 발생하거나, 그 인식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의 바꾸려는 의지가
생기면서 새로운 인식의 틀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그리고 새로운 인식의 틀이 만들어지고 하는 식 으로 우리 사회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일'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계속 찾아간다고 생각합니다.
100년, 200년 전에는 여자가 철학자가 된다는 것, 여자가 참정권을 갖는다는 것, 여자가 먼저 청혼을
한다는 것...수많은 이런 것들이 거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여성이 참정권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와 함께, 부당하다고 느끼는 여자들의 요구와 운동이 합쳐지면서 '여자가 철학을 공부하고, 참정권을 갖고, 먼저 청혼을 하는
일' 들이 이제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저는 연령차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이 성욕을 갖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평균 수명이 현격하게 길어지고,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그리고 '노인의 성욕은 추하다'는 사회인식을 부당하게 느끼는 노인들이 생겨나고,
그에 동조하는 운동이 진행되면서 '노인의 성욕은 추한 것'이라는 사회인식이 크게 도전받고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는 바로 그런 선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부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려고 노력하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면 부자연스럽게 보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그런 시점이
아닐까는 게 제 생각인 겁니다.
"제 경우 나이 들면서 생각이 점차 정리되는 것은 <의 식 주 섹 >은
소박할 수록 좋겠다는 겁니다.그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알고보면 자본주의사회의 성장동력이었고 그러한 욕구를 부추기는 것이 자본의
전략이었지요."
빠리걸님의 이 말씀이요. 제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게 됩니다. 솔직히 더 멋진 옷을 사고 싶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더 멋진 집에 살고 싶고, 더 총체적이고 농익은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는 저자신을 봅니다. 사실상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 것이 많은 게 솔직한 저자신입니다. 비자발적으로 소박하게 살고 있는 거죠. 소박한 제 삶을 아끼고 사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은 더 멋진 옷을 사고 싶고, 좀 더 예술적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싶고, 좀 더 쾌적한 공간에서 살고 싶은 욕구를 단순히
'자본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이라고만은 저는 개인적으로 절대 보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들이 인간이 오랜 역사를 통해 추구하고 간직해 온 소중한
욕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빠리걸님과 제 생각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인 것 같습니다. 빠리걸님은 의식주섹은 소박할수록 좋겠다는 신부님이나
스님의 입장이신 것 같습니다. 저는 신부님이나 스님처럼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도 소중하지만, 다양한 욕구를 다양하게 멋지게 추구하는 삶도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다양한 욕구를 나이와 상관없이 다양하게 추구하는 것이 그런 욕구를 부추기는 자본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아름답다고 보는 점이 빠리걸님과 다른 생각의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다르고 '깔치뜯고 싸워도' 우리는 칭구 맞지요?
2009.03.27 11:32:10 (*.61.196.149)
빠리 걸
부자연스럽지만, 부자연스럽게 보는 것이 연령차별적인 인식에 근거한 것이니까 리스트에 있는 다른 연령의 남자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보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미갱이님)
제가 인생을 이렇게 3등분 해본 것은 자연(생리변화)에 따른 것입니다. 그 경계의 나이야 물론 조금씩 낮아지고 높아질 수 있지만, 87세라면 누구라도 3)에 속한다는 것은 동의하리라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못한, 부자연스러운 처신이라고 생각한 것이고요.
40대 후반의 아들낳고 싶어하는 여성을 예쁘게 보지 않는 것도 연령차별이라 생각할 수는 없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실제로 저런 환자가 찾아왔었는데요, 가부장제의 희생자인가? 아니죠. 따지고보면... 시부모의 재산이 많았답니다. 자기는 딸 둘.(대학에 다니고) 시부모는 재산을 아들이 있는 시동생네 집에 몰아 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자기 딸이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40대 후반의 나이에 아들을 낳으려고 찾아온 것이었지요.
의식주섹을 소박하게 산다고 해서 스님이나 신부의 삶처럼 회색으로 재미없게, 풍요롭지 않게 살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정신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만들어내는 문화라는 것, 관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신문에 보니 전교조 교사 2백여명이 일제고사 불복종을 선언했더군요.
일제고사를 강제하는 명박정부는 의식주섹을 화려하게, 풍요롭게 하자는 건설주의자들이죠. 그러나 일제고사 불복종을 하고 체험학습을 하겠다는 교사는 아이들이 경쟁보다는 협동을, 암기력보다는 창의성을 배워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강남에서 고액과외를 하는 선생님 이야기 들으니 시험때가 되면 책을 도둑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다더군요. 화려함, 풍요로움, 1등고지 등을 강요하는 세상의 아이들이 절대로 풍요롭게-정신적으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의식주섹이 화려하지 않아도, 따듯한 감성, 넉넉한 인간관계, 품위있는 문화생활(예술활동)을 누릴 수 있는 삶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세계 여러곳의 공동체의 삶이 그래서 시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걸 <스님의 생활이나 신부의 재미없는 생활>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 거지요.
2009.03.27 11:44:31 (*.61.196.149)
빠리 걸
<다양한 욕구를 나이와 상관없이 다양하게 추구하는 것>에는 저 역시 100%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옷(외모), 음식, 집, 섹스............를 벗어나도 훌륭하게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의식주섹)에 집착할 일이 아니라요.
박노자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
최진실, 장자연 등 여러 연예인 자살 "사건"을 생각하면서, 그 근원적 이유를 한 번 파헤쳐볼까 합니다. 近因이야 특히 장자연씨의 경우에는 아주 분명합니다. 연예인은 "판촉"돼야 하는 상품이 될 때에는, 그 상품의 일차적인 구매자가 사실상 독점 기업 (방송사 등등)일 때에 판매자에게 구매자가 얼마든지 무서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품"이란 성애화된 이미지의 여성의 몸이라면, 독점적 구매자의 폭력은 또 얼마든지 성추행/성희롱/성상납 요구로 나타나게 돼 있다는 것이지요. 이 형태 자체는 예컨대 대기업들이 중소 하청기업들에게 행사하는 단가 인하 압력과 구조적으로 흡사한 것이고, 시장이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십분 보여줄 뿐입니다.
우리는 보통 "국가 폭력"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사실 국가보다는 시장은 어쩌면 더 끔찍한 폭력을 더 쉽게 행사하지요. 국가를 비판할 자유라도 우리가 지금으로서 갖고 있는데 (물론 이명박 시대에 접어들어 그 자유가 많이 축소돼갑니다....) "나"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시장 행위자를 "나"는 나서서 비판한다는 것은 거래 중지와 시장으로부터의 퇴출을 전제로 하는 일입니다. "명문대" 시간 강사 분들 같으면 "고용주"를 비판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경우를 이전에도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대학교는 방송사보다 이미지가 다소 "고상"하지만, 이 시장바닥에서의 "독점적 구매자"라는 점에서 흡사합니다. 국가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여론이 무서워서 대통령이나 장관이 자신의 부하에게 참아 할 수 없는 행위를, 교수가 되고 싶어하는 여성 대학원생에게 그 지도교수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주 용감한 극소수의 피해자들이 출세를 포기하면서 이 문제를 공론화시킨 덕에 우리가 이만큼 "공개적으로" 아는 것이고, 우리가 "공개적으로" 아는 부분은 현실의 빙산 일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피라미드적 시장 구조 (극소수의 구매자, 무수한 판매 희망자)가 근인이라면 원인은 "연예인의 신체"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시각에서 찾아야 할 듯합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미의 층위가 중첩됩니다. 일면으로는 크게 성공한 연예인은 "국민의 몸"이 됩니다.
옛날에 신채호가 "영웅을 흠모하는 선진적 국민"을 찬양하곤 했는데, 자본주의 사회의 "영웅"은 스포츠영웅과 인기 연예인입니다. "욘사마" 정도라면 현실 세계에서도 한일 관계의 하나의 변수가 된 것이지만, 특히 각종 "한류 스타"에 대한 "국민"의 시선에서 이와 같은 시각은 현저하게 발견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머나먼 태국이나 라오스에 가서 "우리 국민의 대표자"로서 그곳을 대중문화 차원에서 "정복"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그들에 대한 현지인의 열광을 "대한민국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보통 성형수술을 거쳐 백인화된 듯한) "미모"는 미의 표준으로 취급되는 것이고, 그들을 안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속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됩니다.
제가 한 번 한 대중 강연에서 어떤 질문자가 김태희인가를 거론했을 때에 "그게 누구에요?"라고 물어봤을 때에 "그걸 어떻게 모르느냐"는 다수의 반응이었습니다. 김태희를 모르면 "간첩", 즉 비국민입니다. 불쌍한 이북 사람들에게 별로 잘 생기지도 않은 김정일 아저씨나 역시 별로 외모가 준수하지 못한 그 부모 친척 밖에 아주 가시적인 "네이션 심볼"은 없다 싶이 하지만, 이 쿨하고 다이내믹한 위대한 대한민국은 자랑스럽게도 김태희나 장동건, "욘사마"의 신체들을 그 상징으로 소유하고 있으니 유유자적하게 자애자중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네이션 심볼" 이야기는 최종 소비자 쪽 이야기지요. 판매 희망자 (연예인 지망생)와 판매 중계자 (기획사), 일차적 구입자 (방송사 등등)의 차원에서는 특히 성애화된 여성 연예인의 몸은 일차적으로 "돈을 벌어주는 기계"입니다. 이 날씬한 다리, 이 "짜릿하고 파격적인" 드레스 차림, 이 "귀여운 미소", 이 모든 "매력 만점"으로 시청률을 높여야 하고 광고를 찍어서 물건을 팔아야 하고 영화들의 흥행 성공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지요.
시장에서의 돈벌이라면 당연히 경쟁 붙기 마련인데 연예인 사이에서도 "외모 경쟁" 등등은 치열할 수밖에 없지요. 누가 모다 많은 "매력"을 발산하는지, 누가 매체에서 보다 자주 나오는지, 누구의 몸값이 더 높은지, 누가 스타 반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점하는지.... 자본주의 시스템은 다 그런 것이고 "몸 값"이라는 아주 끔찍한 표현은 교수에게도 일선 회사원에게도 그대로 쓰지만 아주 큰 돈이 왔다갔다하는 연예계에서는 "나 자신의 상품화하기"가 훨씬 더 철저합니다.
인생 자체가 이제 "판매" 된 것이니까 어디에서 뭘 해도 늘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고, 개인 생활도 거의 다 공개돼 "매력"의 한 요소가 되니 연애하고 가정 꾸리고 하는 일 하나 하나 다 자기 자신의 "판촉"과 연결됩니다. 마르크스나 프롬이 다시 깨어나도 "인간 상품"의 보다 완전한 형태를 못찾을 것입니다.
사실, 인간도 거의 없어지는 듯하고 남은 것은 광고소득과 신문 연예계 뉴스 등등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비관자살을 안하겠습니까? 저만 해도 이와 같은 코스를 가게 됐다면 조만간에 인생에 뜻을 잃어 죽음을 택했을 것입니다. 완전히 탈인간화돼 "살아 걸어다니는 광고판이자 은행 통장"이 되는 압력을 계속 받으면 도대체 더 이상은 왜 삽니까?
근인이야 어떻든간에 연예계 종사자들을 자살하기 쉬운 환경에 집어넣는 것은 "자기 상품화" 규범과 보편적 "인간성"의 충돌입니다. 인간으로 남으려는 사람은 이 규범들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결국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인간성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다 얼마 지나면 그 죽음도 망각되고 줄거운 대한민국 대중들은 더 새로운 연예계 검투사들의 "짜릿한 드레스"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일본을 따라잡아 추월한 이 위대한 "쿨함의 제국", 만세!
엉? 정말 빠리걸님과 저는 참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 같으면 제가 한 대답들에 대해 '아~그렇게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슴니다~'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저는 연령차별에 대한 제 생각이 100% 맞다는 주장은 아니고요. 어느 측면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만...빠리걸님의 생애 단계별 그 의견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인간의 역사를 간단히 돌이켜 볼 때, 의식주섹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진지하게 탐구해 오는 과정에서, 종교는 의식주섹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억제하고 콘트롤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을, 예술과 산업은 의식주섹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다양하게 발현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의식주섹에 대한 인간의 욕구와 탐구와 추구를 저는 단순하게 물질만능주의로 보지는 않습니다.
글고 참...빠리걸님이 물으신...아들 낳고 싶어하는 40대 후반의 여성 이야기요. 그 여인을 움직인 남성중심주의나 가부장제나, 재산에 대한 욕심 등이 안 이뻐보이는 것이지 그 여인이 40대 후반이라고 해서 안 이뻐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산 상속 때문에, 아들 중심주의 때문에 아들 낳고 싶어하는 여성을 탓하면서 그 여성이 40대 후반 여성이기 때문에 더 탓하고 이뻐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 저는 그것도 연령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권리라면 연령에 차이없이 있는 것으로 인정해 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0대 후반에 딸을 하나 낳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여성, 20~30대 어리고, 어려울 때 아이 기르는 재미를 모른채 아이를 길러버린 40대 후반 여성이 조금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진 후 정말 아이를 낳아 잘 길러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40대 후반에 자발적으로 아이 낳고 싶은 욕구를 갖고 실행하는 여성...저는 또하나의 이쁜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글고 또하나 참참...연령차별에 대해 다른 칭구들도 의견이 있으면 좀 올려주면 어떨까요? 어쨋든 그동안 진집한 토론이 이루어진 것 같아 토론방으로 이 글을 옮겨놓겠슴니다. 꾸벅
2009.03.28 11:53:59 (*.61.196.149)
빠리 걸
글이 없어져서 잠깐 놀랐습니다.
엉? 정말 빠리걸님과 저는 참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 같으면 제가 한 대답들에 대해 '아~그렇게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슴니다~' 할 것 같은데...(미갱이님) (토론방으로 옮겨가며 토론 계속 하자면서 이런 발언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똑 같은 말을 저도 미갱님에게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토론에 대한 자세가 둘이 비슷하니까 토론이 계속 이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많이 같은 모습도 보입니다만... ㅎㅎㅎ)
연령이라는 것은 삶의 내용과 질에서 따로 분리해 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인생을 3단계로 나눈 것은 인류 공통적인 것이라 생각되고요. 그 경계선의 나이야 칼로 가를 수 없겠지만요.
40대 후반이면,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데 무리가 따릅니다. 수태도 힘들거니와, 산모의 건강도, 아이의 건강도 담보하기 힘들죠. 35세 이후엔 기형출산율이 높기 때문에 그 이전에 출산완료할 것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35세 이전 출산완료를 권장한다고 해서 연령차별이라 할 수는 없는 거지요. 나이 먹어 가면서 인간의 발육, 성장, 생리변화가 일어나는 것, 그건 <자연의 뜻>이니까요. 스스로 자, 그러할 연. 스스로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자연입니다.
그런데 평생을 불임으로 아이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성별 가리지 않고) 가지려고 노력할 수야 있겠지만, 폐경기가 다 되어서도 배란촉진제를 맞고, 인공수정을 하고, 타인의 정자와 난자를 빌어오고.......... 이렇게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양을 해도 되는데... 무언가 집착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황폐하게 하는 욕심일 뿐이지요.
게다가 아들선호 이유가 분명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재산(물질)의 확대(확보)를 위해 애를 쓴다는 건 참 안스럽습니다. (대학생이 된 딸들에게 부모나 조부모들이 몸으로 가르치는 건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아기가 자라면서 할머니 같은 엄마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입장도 생각해보아야겠지요.
그래서 인생설계라는 건 '연령'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움에 한이 맺혀 70 노인이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가는 걸 뭐랄 수는 없지만 자기가 몰랐던 것을 아는 기쁨에 더해 '교복'을 입어보고 '졸업장'을 손에 쥐어보고........ 이것은 또 다른 건강하지 못한 집착이라는 생각입니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욕구..........아름답습니다. 부자연스러운 욕구........별로 아름답다고 보이지 않네요.
종교는 의식주섹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억제하고 콘트롤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을, 예술과 산업은 의식주섹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다양하게 발현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의식주섹에 대한 인간의 욕구와 탐구와 추구를 저는 단순하게 물질만능주의로 보지는 않습니다.(미갱이님)
종교가 의식주섹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억제하고 콘트롤하면 그게 어찌 아름답겠습니까? 요즘 강남의 교회는 '청부'를 이야기한다더군요. 헌금내면 은사가 내릴 것이다. 많이 내면 많이 벌 것이다. 그렇게 버는 것은 깨끗한 돈이다.......중세에도 마녀사냥이며 종교전쟁이며 면죄부 판매며....... 더러운 짓들도 많이 했지요.
* 자연스럽고 소박한 욕구의 충족.................인류를 파멸에 몰아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속적발전가능한 문화를 생산할 것 입니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탈인간화되지 않은)
* 부자연스럽고 화려한 욕구의 충족........... 끝간 데를 모를 것입니다. 장자연을 취하려던 87세 노인처럼. ('탈인간화'되었기에 장자연은 그들을 악마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
2009.03.28 15:53:44 (*.224.28.130)
미갱이
빠리걸님...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우리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계속 변화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동시대인들이 대충 사회적으로 합의를 본 '부자연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이 있지만, 그것은 계속 변화한다는 것만이 진실이고, 그리고 완전히 변화하지 않았더라도 개인적으로 '부자연스러움'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생각만이 진실이 아니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차별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이 더 풍성하고 다양한 사회를 위해 좋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이런 다른 시각으로 보면 좋겠다, 이런 시각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변화한다는 것 외에 진실은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빠리걸님이 저와 다르게 생각하시는 것을 존중하고 인정합니다. 빠리걸님의 문제제기 덕분에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제 생각은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아 이제 제 이야기는 고만하고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봤으면 싶습니다.
P.S 참 덕분에 age discrimination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찾아보게 됐었는데요. www.wikipedia.com에 age discrimination이라고 넣고 검색했더니 여러가지 자료가 나왔더랬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 보셔요.
제가 제 이야기는 고만하고 싶다고 했는데 빠리걸님이 답이 없으시니까 제가 무례했던 건가 걱정됩니다. 같은 이야기를 자꾸 반복하게 되는 것 같아 그런 거니까 혹시 기분나쁘게 해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제게 더 묻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데까지는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009.03.31 13:15:49 (*.61.196.149)
빠리 걸
토론에 무례 유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자기 생각을 드러내면 되는 건데요.(어제는 제가 좀 바빴네요. 죄송 ^^)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자연스러운게 자연스럽게 보이고, 자연스럽게 보이던 것이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거 완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한 '자연'이라는 건 생리적변화에 따른 것에 국한했다는 것을 이해해주십셔.
예를 들어 14세 소녀가 월경을 하는 것, 49세 여성이 폐경(완경)을 하는 것.......... 개인차가 약간씩 있기는 하지만 이건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가임기의 여성이 임신을 하는 것......... 이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고요.
다시 말해 '문화적 사회학적 자연스러움'을 논했던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했던 것이라 생각해주심 되겠습니다. 긍까 미갱이님이 계속 '문화적 사회학적 (부)자연스러움'까지 폭넓게 이야기 하셨다면, 나는 계속 '생물학적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고요.
.예전에 양반집에서 노인이 시들어갈때, 젊은 하녀를 곁에 묶어 두었다지요. 손발이 차가워지니까 인간 난로겸, 애완품으로...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효도요,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권리일 수 있고, 하녀의 입장에서 보면 호구지책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 사회문화적 관점에서야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그러나 멀리서 보면 그건 또 신분제 사회의 문제이고 종살이를 해야했던 여성의 인권문제이기도 하지요. 지금 보면 전혀 자연스러울 수 없는 시츄에이션이고요.
일반적으로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외모차별주의, 연령차별주의..... 등이 사회적 약자가 편견에 의해 차별받고 고통받게 되는 원인이 되는 부정적인 사고를 일컫는 것으로 본다면,
사회적 약자라고 절대로 볼 수 없는 대재벌의 총수, 회장......이 87세 먹도록 주야장창 그런 짓거리를 해왔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것을 '그의 다양한 욕구'로 이쁘게 봐줄 수는 없는 것이 까칠한 빠리 걸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젊은 하녀의 경우가 신분제사회의 문제라면 장자연 사건도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이고, 그렇게 끌려다니며 당해야 했던 여성의 인권문제이기도 하지요. (부귀를 움켜쥐고 보다 많은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믿던 자들은 연예인 성매매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이번 일은 스스로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젊은 여성은 자기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두려움 혹은 분노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그녀를 분노하게 했거나 두렵게 했던 일들이 이번 기회에 정화되기를 기원합니다.
2009.03.31 14:34:04 (*.249.240.253)
미갱이
빠리걸님. 제가 충분히 제 뜻을 잘 전달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네요. 제가 한 이야기를 주욱 다시 한번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줄곧 87세 그 노인의 그 '장자연님에 대한' 행위, 그 성욕이 자연스럽거나 인정해야 할 행동이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나쁘지만, 나쁘다고 이야기할 때도 나이에 따라 다르게 편견을 갖고 평가하지 말자는 것이었죠. 말하자면 저는 그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경우, 리스트 속 49살 남자보다 53살 남자가, 53살 남자 보다 65살 남자가, 65살 남자보다 87살 남자가 받는 형이 '나이가 많은 주제에 껄떡거린' 이유로 더 무거워진다면 확실한 연령차별이라고 본다는 거지요.
말하자면 매춘남을 찾은 여성에 대한 형량이 매춘부를 찾은 남성에 대한 형량보다 더 높게 내려지는 것은 분명한 여성차별이지 않습니까? 현실 사회에서 매춘을 나쁘게 보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할지라도, 매춘남을 찾은 여성을 매춘부를 찾은 남성보다 더 나쁘게 , 더 부자연스럽게 보는 편견과 인식 때문에 똑같은 행위에 대해 더 무거운, 성차별적인 형벌이 내려진다고 보는 겁니다.
따라서 그런 편견과 인식에 좀 더 sensitive해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지요.
2009.04.01 19:41:46 (*.61.196.149)
빠리 걸
형량의 문제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네요.
얼마전 한국재판정에서 손녀딸을 성폭행한 할아버지는 집행유예를 받았지요. 그녀를 성폭행한 작은압지, 큰압지 등은 항소심에서 구속되었고요.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가 여성들이 난리치니까 항소심에서 구속했는데, 할아버지는 풀어주더군요. 노약자라고. ..아니 노약자면 왜 그짓을 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재판정에선 나이를 고려했지요. -.-)
2009.04.03 11:09:02 (*.224.28.130)
미갱이
남녀평등을 이야기할 때의 오래된 논쟁 즉 평등한 대우냐, 여성에 대한, 특히 모성에 대한 보호냐를 둘러싼 논란이 생각납니다. 회사에서 숙직, 야근을 둘러싸고 모성보호 차원에서 여자직원들을 숙직에서 뺄려고 하면 남자 직원들은 여자 직원들이 자신들이 유리할 때는 평등한 대우를, 불리할 때는 보호를 앞세운다고 불평을 하곤 했죠. 숙직이라는 제도를 없애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기도 했지만. 어쨌든 남녀평등을 요구할 때 보호의 개념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모성보호에 국한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연령차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나이에 따른 차별없는 대우냐, 노약자에 대한 보호냐의 논란이 제기되고, 유리할 때는 평등한 대우를, 불리할 때는 보호 개념을 내세우게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남녀평등을 요구할 때 모성보호에 국한해 제한적으로 여성 보호의 개념을 사용하듯, 노인 보호의 개념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평등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빠리걸님이 드신 그 경우는 말하자면 불리한 상황에서 노인에 대한 보호의 개념을 내세운 거라고 보여지네요. 그 경우 그런 판결은 분명한 연령차별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연령차별은 나이에 따른 차별 대우의 개념인 만큼 꼭 노인만 받으라는 법은 없겠죠. 말하자면 작은압지, 큰압지가 연령차별을 받은 거겠죠.
2009.04.03 13:32:34 (*.61.196.149)
빠리 걸
강희락 경찰청장이 왕년에 '기자들 모텔에 많이 보내봤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죠. 한국남자들 사이에 '성접대'가 꽤 일반화되어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왜 비지니스를 술먹으며, 모텔에서 성접대 받으며 하는지...... 그러니 정치며 경제산업구조가 이 모양 이 꼴이 아닌가 합니다.
오랫동안 남자들이 주도하는 사회이다 보니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남성들의 숫컷본능이 강화되거나 용인되고... 유채가 부르짖는 사랑과 결합된 에로스가 아니라 남자들의 몸만을 위한 일방적 에로스가 난무하고, 여성들은 이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게 되지요.
작은압지, 큰압지가 연령차별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그들도 나이에 따른 대접으로 노인과 마찬가지로 집행유예를 받아야 했다는 뜻???
성을 누리는데 연령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면, 잘못된 성행위에 대한 처벌에도 연령차별을 두지 않아야 할 것인 바, 한국 사회는 노인네들에 대해서는 참 많이 관대합니다. 아니, 속으로는 무시하면서도 말이지요.
처음에 언급했던 87세 노인은 머 아실지 모르겠지만 재벌 총수 출신입니다. 일찌기 여배우니 뭐니 후실로 들이앉히는 걸로 유명했던 사람이지요. 수십년 동안 같은 짓을 반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이'를 들먹였던 것이지, 노인네는 성욕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발휘해선 안 된다.... 와 같은 차별의식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거야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요.
다만 유채님 말하듯 에로스 사랑도 로맨스도 아니고 그냥 숫컷의 껄떡댐으로 수십년을 지냈을. 그리하여 많은 여성들이 가진 재주를 발휘하지도 못해보고 돈에 파묻히게 하거나 장자연처럼 악마를 경험하게 하는 그런 인간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것일 뿐. 모든 인간은 나이들면 수행에만 매진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니 이제 그만 예민해지시길...
------------ 웨렌 버펫과 같은 이들은 수십년 전 살았던 그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자식에겐 재산을 상속해주지 않고 자기 재산을 (라이벌로 생각할 수도 있는) 빌 게이츠재단에 맡기고...
이런 사람들은, 아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관심사'도 참 많이 다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장자연에게 성서비스를 요구했던 그 인간과는 말이지요.
2009.04.03 21:07:14 (*.224.28.130)
미갱이
아이구나. 아침에 일어나 들어와 보고 깜짝 놀랐네요.바빠도 빠리걸님 주무시기 전에 꼭 써야할 꺼 같애서 아침준비하다 후닥닥 씁니다.
빠리걸님. 제 말을 작은 압지, 큰압지인가가 집행유예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를 하셨다고 해서 참말 화들짝 놀랐네요. 제가 쓴 앞 댓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그런 오해를 살 수도 있겠네요. 제 이야기는 연령차별은 꼭 노인한테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나이에 따른 어떤 형태의 차별이든 적용된다는 뜻이었고요. 그 노인이 노약자 보호라는 측면을 내세워서 낮은 형을 받았기 때문에 작은 압지, 큰 압지가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또하나의 연령차별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겠다는 해석이었죠.
그동안 논의를 주욱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두 사건 모두에서 연령이 형량 판단의 주요 변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작은 압지, 큰 압지, 노인이 차별없이 똑같이 무거운 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노인이 그런 식으로 노약자 보호라는 막을 내세워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은 노인 권익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장자연님 사건이든, 그 사건이든 죄의 형량을 정하는데 나이가 중요 변수가 될 또다른 명확한 근거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사건인 만큼, 나이가 많다고, 또는 나이가 적다고 더 나쁜 행위라고 인식하거나, 판단하거나, 형량을 구형해서도 안된다는것이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제가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연령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똑 같은 나쁜 행위를 한 자를 연령에 따라 더 나쁘게 보고 욕하거나, 더 형량을 무겁게 내리지 않도록 주의를 하자는 겁니다.
이젠 장자연님 사건의 진짜 본질로 들어가서 논의를 하는 게 어떨까요?
2009.04.14 18:24:55 (*.61.196.149)
빠리 걸
신정모라(엄마성을 이름에 넣었던 최초의 여성)님이 보낸 메일입니다. 사건의 본질에 대해 과격하긴 하지만........
[성상납이 아니라 인격살해치사죄에 해당되는 영혼폭력이다]
성상납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선진국에서나 자발성이 내재된 개념인 성상납이 있을 수 있겠지. 한국이란 곳에서 여성들이 권력의 강요 하에 정신적 폭력을 당해온 빼도 박도 못하는 진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성상납? 여자들이 목표를 위해 상대를 유혹해서 자기도 즐기면서 성교접을 하는 것이 성상납 상황이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객관적으로 성상납이 존재하기 어렵다. 권력의 강요로 인한 성폭력만 있을 뿐. 당하고도 출세를 위해 범죄피해를 신고하지 못했다고 성상납이 되는가?
장자연의 경우에 자신이 원치 않은 성적 행위를 강요받았으니 심한 모욕감과 자기모멸감 자신의 존엄성에 가해진 상처 등으로 인한 피해 상황이 벌어졌던 걸로 추측된다.
같은 이치로 연쇄 성폭행범은 발바리가 아니다. 그런 단어를 쓰면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 행위를 하는 것이다. 언론인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너무도 쉽게 말도둑질하는 버릇이 있다
정신적 폭행으로 마음에 부상을 입고 자살한 장자연에게 성상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언론들도 피해자에게 2차 가해 행위를 하는 셈이고. 폭력을 당한 것은 정신적 폭력이든 육체적 폭력이든 상납이 될 수가 없다.
연예기획사와 성구매자들은 여성의 몸을 인신매매한 것이고, 성구매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이 벌어진 것이다.
인신매매 + 정신적 폭력 이라는 2중의 범죄가 존재한다. 여기서 강요로 인한 정신적 폭력 상황에 처한 피해 여성은 성매매특별법으로 처리되기 어렵다. 고 장자연씨 경우에는 성매매 피해여성이 된 것이 아니라 단순 정신적 폭력 행위를 당해왔던 것이다. 장자연은 인격살인치사죄 피해자인 셈이다. 피해자가 자살했을 경우 반드시 가해자를 치사죄로 처벌하는 법규정이 꼭 필요하다.
물주를 찾아 성매매를 하는 연예인도 있다고 하는데 그 경우에는 성매매특별법상 피해자가 되는 것이고.
돈과 권력으로 여성의 성적 선택권을 박탈하여 한 영혼을 박살내버린 언론인들은 단순 성폭력범이 아닌 영혼 폭력범들이다.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몇몇 언론인들이 돈과 권력으로 여성의 영혼에 돌을 던져 생명을 빼앗았다면 응당 처벌을 받고 언론계를 떠나야 한다. 아니면 한국 여성계가 모두 들고 일어나 자살폭탄을 들고 조선일보에 투신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 기획자 *** 49세,
***** 연출 *** 피디 50세,
***** *** 대표 45세,
******* ***피디,
*** ***** 대표,
*** ** 87세,
****** *** 피디,
*** *** 53세,
*** **** *****5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