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뇌물’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전후하여 언론의 논조는 흡사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같이 바뀌고 있다. 그를 기어이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도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고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법정에 세워 부관참시 할 것 없이 고인의 명복이나 빌어주자는 것이 대세다.

이런 논조를 가장 열심히 펴는 신문은 <중앙일보>다. 문창극 칼럼(4월 28일치)은 “결정적 물증이 없다면 그의 진술을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체면을 위해서다”라고 주장했다. 송호근 칼럼(5월 5일치)은 “잡범 수준의 통치자라도 난도질당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유권자가 위임했던 주권을 난도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폈다.

두 칼럼의 주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매질은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잡범 수준의 통치자이지만,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체면을 위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 쪽은 <조선일보>다.

‘노무현씨를 버리자’는 제목이 붙은 김대중 칼럼(4월 27일치)은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고 제안했다. 이 칼럼은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 수준이다.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쓴 것이 더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그렇다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처럼 수천억원대(두 전직 대통령에게 부과된 추징금만 5000억원가량)의 뇌물을 받아야 덜 창피하고, ‘2류 기업’인 태광실업이 아니라 재벌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야 덜 부끄럽다는 말인가 하고 되묻고 싶다. 대표적 논객들의 주장을 보면서,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지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지성의 사전적인 의미는 ‘감정이나 의지와는 달리 사물을 개념에 의하여 사고하거나 또는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판정하는 오성적인 능력’이다. 한마디로 분별력을 말한다. 대통령으로서 금전 문제에 연루되었더라도 평소 도덕성을 자랑했던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큰 배신감과 절망을 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분별력이다. 마찬가지로 오래 사귀어온 가까운 기업인에게서 수십억원을 받은 것과 여러 재벌에게서 수천억원을 받았다는 것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도 분별력이다. 수십억원을 받으면 잡범 수준이라 창피하다는 주장은 어떤 분별력에서 나온 판단인지 궁금할 뿐이다.

언론의 이와 같은 반지성적인 태도는 독자들을 더욱 절망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평소 ‘깨끗한 정치’를 강조했다는 점을 들어 ‘노무현의 표리부동’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비판은 노무현 개인의 도덕성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한국에서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대통령을 둘러싸고 견고하게 만들어진 권력형 부정부패의 고리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으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전·노 두 전직 대통령처럼 수천억원도 끌어들일 수 있는 권력구조 분석에까지 나아가, 이런 구조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지성의 역할이다.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