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정재숙(미술기자)-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말한 이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다. “2010년까지는 살아야 내 작품세계를 대충 마무리할 수 있을 텐데” 했던 그다. 1996년 미국 뉴욕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는 “내가 너무 욕심이 과해서 천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 말들이 인생살이에서 다 통하는 한마디처럼 느껴진다.
갑자기 백남준을 이야기하는 것은 며칠 전 받은 작은 책자 때문이다. 「백기사」는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이 부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뉴스레터. 백남준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바라봤을 미국 마이애미의 하늘과 바다 사진을 바탕으로 한 창간호 표지에 바로 고인의 그 한마디가 얹혀 있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만난 소설가 윤후명 씨는 “요즘 글은 안 쓰고 그림만 그리고 있다”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오랜 지병으로 병원을 단골 삼은 그는 몹시 수척했지만 눈만은 형형히 빛나고 있어 놀라웠다. 그가 쓴 단편소설 「서울, 촛불 랩소디」는 백남준을 모델로 한 것인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라졌으나 뇌리에 남아 있는 그 무엇, 백남준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라고.” 지금 윤후명 선생이 그림에 푹 빠져서 찾고 있는 것이리라. 미술을 한다는 행위는 중독성이 강한, 참으로 묘한 것이다. 춤, 음악, 연극이 다 그렇듯이.
한국인이 꽤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일의 기쁨과 슬픔」제6장 제목은 ‘그림’이다. 무명의 중년 화가가 몇 년씩 새벽부터 밤중까지 나무 그리기에 매달려 사는 얘기다. 작가는 화가의 마음을 이렇게 읽는다. “그가 헌신적으로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자아를 옆으로 밀어놓고, 우리와는 다른 것, 우리를 넘어선 모든 것을 인식하려는 시도다.”
화가 이흥덕(56)씨 또한 지난 30년 가까이 오로지 한 가지 주제를 그리는 일에 전념해왔다. 그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한국 사회를 되씹어 이해하게 만드는 이를테면 세속적 성상(聖像)이다. 이씨는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을 카페로 은유한다. 그 카페에 모인 군상이 벌이는 오만가지 사건 속에서 작가는 어떤 태도와 행동 규범을 제시한다. 풍자와 해학이 질펀한 속에 우리 자신이 발가벗겨진 그림을 들여다보노라면 때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때로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이흥덕 전」에서 만나는 그림들은 ‘사라졌으나 뇌리에 남아있는 그 무엇’이다. 작가는 이제 닫혀있는, 또는 밀폐된 카페 공간을 벗어나 광장으로 내달리고, 신도시로 이동하고, 지하철과 이발소와 풀장 등으로 뛰쳐나간다. 문득, 담 위에서 카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람에 눈길이 머문다. 그는 화가의 자화상이자 우리 각각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 : 이흥덕 작 「용서의 카페」캔버스에 유채,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