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김선주학교' 입학기



  1988년 4월 12일, 한겨레신문으로부터 합격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한겨레에 충성할 것을 굳게 맹세했다. 아, 그런데 입사를 하고 보니 아후...거기엔 어쩌면 그렇게 잘난 년놈들이 많은지! 다들 쟁쟁했다. 기가 팍 죽었다.

  김선주 교장선생님은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선배였다. 당당한 자기주장, 아니다 싶은 것과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일전불사를 주저하지 않는 그 기백, 대범한 성격과 호탕한 웃음, 낮부터 후배들을 몰고 보무당당 술집을 향하는 호기로움... 그 거침없는 하이킥은 단번에 나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녀가 단순히 중원의 승부와 성취에만 집착하는 여장남자였다면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열혈강호였지만 때론 변방의 소심한 나 같은 은둔형 외톨이에게까지 자상한 관심을 보여주는 섬세함 덩어리이기도 했다. 자기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씨발, 씨발,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구 자괴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태연히 차도를 무단횡단하고 껌종이를 암시랑토 않게 길거리에 버리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집안에 여자라곤 세대가 다른 할머니와 엄마 밖에 없이 자란 나는 이 현대교육을 받은 '배운년'한테 홀딱 빠졌다! 어쩌다 점심을 같이 먹는 날이면 나는 이 여걸선배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 뒤따라가면서 그녀가 버리는 껌종이를 조용히 수거하곤 했다.


  어느 날, 김미경이 김선주의 애제자라는 소문이 들렸다. 아, 김미경이가!! 아, 씨팔.. 근데 하긴 그럴 만하지.. 이래도 예쁘고 저래도 멋있는 김미경!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이상하게 질투는 나지 않았다. 다만 눈물겹게 부러웠다. 미모와 진보성 때문일까...미모야 어찌 해 볼 수 없는 영역이지만 진보는 노력하면 될 수 있자나..

  난 주기적으로 미경이를 찾아가 켜켜이 보수반동인 내가 환골탈태를 위해 읽어야 할 페미니즘 책들을 묻곤 했다. 미경이와 한 번 이야기하고 나면 세상이 환해졌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가요무대'를 보며 한 시간쯤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난 다부 수구꼴통 집안의 외동딸로 돌아가곤 했다.

  아, 어떻게 하면 나도 간택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도 김선주의 애제자가 될 수 있을까...재수(再修)를 해서라도 그의 문하로 들어가고 싶었다.

  어느 날, 박재동이 김선주가 아끼는 애제자라는 소문이 들렸다. 아, 박재동!! 아, 씨발이네! ..하긴 근데 그럴 만하지...박재동은 또 누군가. 미남에, 만능에, 마음은 거의 부처님 큰형님뻘, 다 타고난 넘이자나! 아참 드러바서...내 주변에 괜찮은 년놈들은 죄다 '김선주학교'에 입학하는 게 아닌가! '김선주 민사고'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강렬해졌다. 삼수(三修)를 결심했다.

  어느 날, 조선희와 최보은이 '김선주학교'에 공동수석으로 입학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아, 씨발, 뭐야!! 수년을 한결같이 뒤를 따라다니며 껌종이를 줏었는데 그 놈의 학교는 내신성적은 반영 안하구 대체 뭘루 사람을 뽑는 거야, 엉?

 그나마 조선희가 합격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음..다행히 미모 순은 아니었군..사수(四修)에 돌입했다.

 사수, 오수...수험생활은 쉽지 않았다. 장수생(長修生)이 되면서 서서히 지쳐갔다. '김선주학교'에 입학한 년놈들은 어딜 가건 태가 났다. 입학을 하면 금가루를 뿌려주는지 년놈들은 하나같이 대갈통 뒤에 오색 무지개 후광이 찬란했고, 이마에 트라우마 한 점 드리운 거 없이 희희낙낙 행복해 보였다.

 세상은 드러웠다. 왕소심인 내가 <평화만들기>에서 우연히 알게된 남난희와 겁없이 인수봉을 올라간 것도 세상이 너무너무 드럽구 아니꼬와서였다. 이런 노무 인생 살아서 뭐하리.. 어떻게 돼도 좋다는 심정으로 바윗길을 오르는데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평소엔 그 살떨리게 무섭던 암벽이 이상하게 잘 됐다. 한겨레무림의 또 하나의 지존 '강돈항'사부 밑에 들어가 불교와 마음수행에 빠져든 것도 그즈음이었다.

  결국 나는 '김선주학교'에 끝내 진학하지 못한 채 회사를 그만두었다. 20여년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자 가장 처음 나타난 금단증세는 자제심의 와해였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백수가 되어 남아도는 게 시간인지라 나는 카페를 만들어 그동안 삼켜온 말들을 마구마구 쏟아냈다.

 김선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서러웠는지 아세여!!!

 음주가무 없는 수구꼴통 집안에 잘못 태어나 그렇지, 손대면 톡하고 터질 년이라는 거, 멍석만 깔아주면 그 어떤 무당년들보다 더 칼춤을 잘 출 년이라는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선배는 알아주셨어야져!!! 어흑!!!

 야, 조선희, 내가 뭐 글을 못써서 안쓴 줄 아냐, 걸작 쓰구 요절할까봐 안썼지!!! 어흑!!!

 밤마다 이렇게 백세주 한 병을 들이키구 마구마구 자판을 두들겼다. 지난날을 복기하다보면 제풀에 열을 받아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달랑 팬티바람으로 앉아있는 적도 많았다. 한밤중에 팬티바람으로 자판을 두드리다, 벽을 보고 중얼대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다, 노래를 하다, 하며 혼자 스트립쇼를 하고 있으면, 자빠져 자다 오줌 누러 나온 남자는 "에혀, 내일 또 비가 오려나 부다, 또 저렇게 날궂이를 하는 걸 보면.."하며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 지랄발광을 하며 몇 달을 보내던 어느 날, 김선배가 나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원주에 있으니 한 번 내려오라는 내용이었는데, 아, 할렐루야, 그것이 바로 '김선주학교'의 합격통지서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 가문의 영광!!!

 찬란한 축복이요, 영원한 기쁨이어라!!!

 결국 난 재수, 삼수, 사수.........하다 백수에 이르러서야 '김선주학교'에 합격하게 된 것이다!!!


 <끝>


교장선생님, 생일 축하해용~!

교장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저도 나이 들어가는 게 죠아요.

이십대, 삼십대로 돌아가고픈 맘, 쩜도 안들어요.

그래도 환갑이란 말은 듣기도, 쓰기도 싫네요.

김선배가 환갑이라니..이런 환장할 노릇이 어딨어요.

생신이란 말도 안쓸래요. 그 또한 왠지

상노인에게나 어울리는 말 같아서요.


제자들보다 몸도 맘도 더 젊고,

거기다 미모에 각선미까지 한 수 위인 교장선생님,

언제나 생기발랄, 원초적 본능으로 사시면서

시들새들한 저희 제자들 끝없이 각성하며 따라가게 해주세용.

다시 한 번 교장선생님의 생일을 축하드리며...



김을호 올림